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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선공부모임_10년결사/저녁공부

당신이 평생 놓치고 있던 삶의 진실 5가지: 임제록에서 배우는 역설적 지혜

by 마음길 2025.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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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평생 놓치고 있던 삶의 진실 5가지: 임제록에서 배우는 역설적 지혜
<임제록 법안록> 당신이 평생 놓치고 있던 삶의 진실 5가지: 임제록에서 배우는 역설적 지혜

서론: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당신에게

솔직히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공부를 하겠다는 겁니까, 말겠다는 겁니까?

우리는 더 나은 나, 더 깊은 평화, 완전한 행복, 혹은 ‘깨달음’이라 불리는 궁극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고, 명상을 하고, 새로운 경험에 돈과 시간을 쏟아붓지만, 마음 한구석의 공허함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력하면 할수록 목표는 신기루처럼 멀어지고, 우리는 지쳐갑니다.

만약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에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실이 바로 지금, 당신의 눈앞에 이미 펼쳐져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약 1200년 전, 당나라의 선승 임제(臨濟)는 시대를 초월하는 날카로운 외침으로 바로 이 지점을 가리켰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믿음의 근간을 뒤흔드는 강력한 도전입니다.

1. 깨달음을 찾아 헤맬수록 멀어지는 이유

우리는 ‘깨달음’을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도달해야 할 특별한 목표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임제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깨부숩니다. 진리는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며, 그것을 찾으려는 행위 자체가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입니다. 보지 못하십니까? 찾고 있는 바로 그놈이, 찾고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깨달음은 찾는게 아니며, 이 삶이 그대로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삶이 불완전하고, ‘저기 어딘가에’ 더 완벽한 상태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외면한 채 미래의 환상을 쫓습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은 우리가 그토록 찾는 보물이 바로 당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이 자리에, 이 평범하고 때로는 지긋지긋한 삶 자체에 있음을 폭로합니다. 찾는 것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찾던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2. 모든 문제의 뿌리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병'

당신의 불안과 혼란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임제는 그 근본 원인을 단 한마디로 진단합니다. 바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병(病在不自信處)’입니다. 우리는 찰나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부정적인 생각,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철석같이 믿으면서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 변덕스러운 손님들의 말에 온 인생을 휘둘립니다. 그러면서도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우리를 떠난 적 없는 자신의 본래 성품, 이 고요한 알아차림은 믿지 못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공부하는 이들이 그렇지 못하는 것은 그 병통이 어떤 곳에 있는가? 그것은 스스로를 믿지 않는데 있다.

우리는 외부의 권위나 지식, 혹은 특별한 체험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나는 아직 부족해’, ‘무언가 더 알아야 해’라는 내면의 속삭임에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하지만 임제의 가르침은 문제의 화살을 외부가 아닌 우리 자신에게로 돌립니다. 당신의 모든 불안과 혼란은 바깥세상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 가치를 믿지 못하는 이 깊은 불신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3. 최고의 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병’에서 비롯된 모든 노력은 그 병의 증상일 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고치고, 없애고, 얻으려는 모든 인위적인 노력은 오히려 내면의 갈등과 긴장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임제가 ‘최고의 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분별의 중독자’들입니다. 그 중독을 끊는 유일한 길은 더 이상 약물(분별 망상)을 투여하지 않는 것,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일 위대한 수행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인연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기력한 방임이나 체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열반(涅槃)’의 본래 의미와 같습니다. 열반이란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합니다. 깨달음을 향한 욕망, 더 나은 상태가 되려는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던 그 불길마저도 꺼져 차가운 재로 돌아가는 것.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욕망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대신, 그저 인연 따라왔다가 가게 내버려 둘 때, 역설적으로 진정한 평화와 변화가 찾아옵니다.

4. 모든 경험은 한바탕 '꿈'과 같다

왜 찾아 헤맬 필요가 없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수행일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한바탕 ‘꿈’과 같기 때문입니다. 기쁨, 슬픔, 불안, 평온, 심지어 황홀한 영적 체험조차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고통은 이 꿈같은 현상들을 영원한 실체라고 믿고 집착할 때 발생합니다.

깨달음도 찾지 말고 붙잡지 마세요. 찾고, 붙드는 것이 여전히 분별 망상입니다.

이 진실을 설명하는 두 가지 현대적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 당신은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승객과 같습니다. 창밖으로 동대구역, 대전역, 온갖 풍경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당신은 언제나 같은 좌석에 앉아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 삶의 사건들은 그저 지나가는 풍경일 뿐, 그것들을 고요히 지켜보는 당신 자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둘째, 마음은 콘택트렌즈와 같습니다. 렌즈를 손에 들고 있으면 그것을 ‘볼’ 수 있지만, 눈에 끼우는 순간 당신은 세상을 그 렌즈를 ‘통해’ 봅니다. 마음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것을 경험하는 바로 그 렌즈 자체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 렌즈를 끼고 있으면서 렌즈 너머의 풍경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이 관점은 우리를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 즉시 해방시킵니다.

5. 위대함의 끝에는 '지극한 평범함'이 있다

우리는 ‘깨달은 사람’을 상상할 때 신비한 능력을 가졌거나 세상의 희로애락을 초월한 초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임제는 이러한 영적 판타지를 가차 없이 박살냅니다.

진짜 도인이라는 사람들 옆에 바짝 붙어 가지고 한 사흘만 살아 보세요. 밥 먹고 똥 싸고 잠을 잡니다. 그것뿐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특별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마음,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생 아무 일 없는 사람(一平生無事人)’이 됩니다. 여기서 ‘일이 없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더 이상 갈고닦을 ‘공부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프로젝트 자체가 끝나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그저 한평생 아무 일 없는 사람이다.

위대함은 평범함을 벗어난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삶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살아낼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그만 찾아도 괜찮습니다

임제의 가르침은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날카롭게 겨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유와 평화는 무언가를 더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믿음과 끝없는 추구를 그저 내려놓을 때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음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삶 자체이며, 모든 문제의 뿌리는 찰나의 생각을 믿고 본래의 나를 믿지 못하는 병에서 비롯됩니다. 최고의 수행은 억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저 내버려 두는 것이고, 모든 경험은 꿈과 같아 집착할 실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길의 끝에는 초월적인 특별함이 아닌, 밥 먹고, 잠자고, 숨 쉬는 지극한 평범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글을 닫기 전에, 스스로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십시오.

“만약 바로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찾고 얻으려는 모든 노력을 완전히 멈춘다면, 당신의 눈앞에는 과연 무엇이 남게 됩니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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