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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중관학노트

[개념의 실체성 비판-화엄적 논법]-우주

by 마음길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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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학이 한국불교 간화선 수행과 초기 불교의 부처님의 무기설(침묵)을 잇는 논리적 가교이다. 간화선 수행, 모든 화두가 생각 즉 흑백논리를 오도 가도 못하게 중도의 궁지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중도의 궁지로 몰아붙이는 게 간화선인데 중관학에서는 수행이 아니고 논리적으로 생각이 왜 오도 가도 못하는지, 진정한 진리를 왜 생각으로만 발견할 수 없는지를 계속 논리적으로 논증한다.

 

중관학의 반 논리학이 개념의 실체성 비판, 판단의 사실성 비판, 추론의 타당성 비판으로 3단계로 되어 있다. 앞서 개념의 실체성 비판에 대해서 아름다움과 추함, 부유함과 가난, 머리가 좋다 나쁘다, 큰 방은 작은 방, 눈과 시각 대상, 삶과 죽음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하나 하나 중관학의 논법으로 격파하였다.

 

중관학의 논법으로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개념들을 하나하나 논파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개발한 화엄적 논법으로 격파하는 것을 소개해 보겠다.

 

화엄학의 법계연기의 다라니,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혹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무한이요, 무한이 곧 하나다. 하나 속에 무한이 들어가고, 무한 속에 하나가 들어간다는 화엄사상이다.

 

화엄경 전체가 무한에 대한 이야기와 무한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극한 소와 극한 대를 항상 일치시킨다. 개념의 세계에서는 극한 소가 하나의 단어이고 무한대는 모든 단어이다.

화엄의 이치로 보면 어떤 단어를 대상으로 삼아서 그것을 집요하게 의미 정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그 단어의 외연 범위가 무한으로 열린다. 모든 게 다 무한이고 모든 게 다 일체이다. 이것이 화엄의 이치인데 이 이치를 가지고 중관학의 반논리학 3단계인 개념 실체성 비판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보겠다.

 

말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다.

정혜쌍수( 定慧雙修), 지관쌍운(止觀雙運), 곰곰이 생각해 보자.

 

[개념의 실체성 비판-화엄적 논법]

 

우주

우주란 무엇인가? 어디가 우주일까? 우주는 전 하늘이 우주이다. 별도 떠 있고, 달도 있고, 해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앉아 있는 이 방도 우주인가? 여기도 우주인가? 지구도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우주이다. 그러니까 여기도 우주이다. 그러면 우리 입 속도, 뱃속도 우주이다. 모든 것이 모두가 우주이다. 우주 아닌 곳이 없다. 이전까지는 저 위가 우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우주 속에 있다. 모든 것이 우주이다.

시계

시계가 무엇인가?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초침이 있고 분침이 있고 시침이 있고 숫자가 있다. 요즘은 숫자가 없는 디자인 시계도 있다. 도한 초임과 숫자가 없는 모래시계도 시계, 물시계, 해시계도 있다. 시계의 정체에 대해서 추구해 본다. 우리는 컴퓨터, , 하늘, , , 죽음, 인생, 우주 등 이렇게 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 그 원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면서 뻔뻔스럽게 아는 체 하면서 말을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단어는 끝까지 추구하면 정체불명이다.

 

무엇이 시계일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면 하늘에 떠는 있는 해도 시계이다. 해가 하늘에 가운데 떠 있으면 점심이고, 해가 서산에 걸리면 저녁이다. 해가 안 보이면은 밤이고, 뜨면 아침이다. 그러니 해도 시계이다. 하늘의 달도 운행궤도를 통해 시간을 알 수 있다. 별도 알고 보면 모두 시계이다. 뒷산의 나무들도 잎을 통해 계절을 나타내고, 나이테를 통해 나간 시간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물고기도 비늘을 통해서 나이와 계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얼굴도 시계이다. 얼굴을 통해 나이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사람도 시계이다. 만들어진 컵도 대충 보면 어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 건물도 마찬가지다.

 

시계라고 할 때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지만 시계인가? 조금 틀려도 시계이다. 얼마까지 틀려야지 시계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렇게 보면 우주 전체 시간을 나타낸다. 살아있는 생명이건 사물이든 간에 모든 것이 다 시계이다. 시계의 개념의 테두리가 무너진다. 시계 하나이다. 시계가 일즉일체, 모든 게 다 시계다. 하나가 모든 것이다. 즉 시계가 모든 것이다. 이것이 화엄이다. 일즉일체. 우주가 하나이다. 그런데 어디든지 우주이다.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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