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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중관학노트

운전자 관점-유일무이한 절대적 체험

by 마음길 2022.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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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 일반인들의 객관적 시점 ]

세상이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이렇게 질문을 하면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바닷물도 있고 거기에 사람이 살아간다고 답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그사이에 사람이 살아간다. 일체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해도 보통 일반인들의 객관적인 시점에서의 답변은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이다.

 

그러나 부처님께 일체가 무엇인지 질문하면 말씀을 안 하신다. 부처님은 일체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으로 되어 있다고 말씀하신다. 초기 불전 아함경을 보면 일체에 대해서 부처님이 하늘, , 생명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일체는 눈, , , , , 생각 즉 뜻, 그 대상은 형상, 소리, 냄새, 맛 즉 생각의 내용들로 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불교 전문 용어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일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세상을 구성하는 12가지 영역, 12처라고 말한다. 또는 18게로 세분화해서 말씀하신다. 또는 짧게 줄여서 오온이라고 말씀하신다. 오온은 색-물질형상, 수-느낌, -생각, -집중하는 것, -마음에 비추어진 것이다. 오온은 색, , , , 식이다. 다시 말해서 일체에 대한 수직적 통찰이다. 멀리 있는 것이 색이고 가장 깊이 있는 것이 식이다. 그 사이에 수, , 행이 있다. 일체를 눈, 귀 코 해서 6가지 지각 기관과 지각 대상6가지, 12처가 있다고 할 경우에는 수평적 통찰이다.

 

수직적 깊이가 아니고, , , 코가 다 평평하게 대등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색수상행식은 평평한 것이 아니라 수직이다. 깊이에 따라서 가장 멀리 있는 것부터 가장 깊은 것으로 들어온 것이다.

 

오온이든 12처이든 18게이든 공통점은 일체에 대해서 운전자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바라본 모습을 설명하신 것이다. 3자 입장에서 나를 포함한 일체를 운전자 관점에서 내가 뭔가 바라보니까 나에게 눈이 있고, 귀가 있고 하는 지각 기관이 있고 지각 대상이 있구나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 지금 항상 운전자 관점으로 주관적 관점 속에서 살아간다. 부처님께서도 일체를 이 관점 선상에서 이야기하신다.

 

[운전자 관점 모든 것이 유일무이한 절대적 체험이다 ]

비유한다면은 자동차가 하나가 있는데 그 모습이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바깥에서 본모습과 하나는 안에서 본모습이다.. 바깥에서 본모습은 남과 함께 보기 때문에 객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안에서 본 모습을 나 혼자 보기 때문에 주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항상 주관 즉 나 혼자 본모습 이 관점에서만 모든 법을 설하신다.

 

죽은 다음에 빠져나가는 것은 우주에 구멍이 있어서 그리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주관 속에 들어 간 다음 즉 꿈, 잠 속에 들어 간 다음 빠져나간다. 삶과 죽음의 통로가 객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 속에 있다. 각자 내가 죽는 구멍이 내 속에 있다. 내가 태어난 구멍도 내 속에 있다. 진짜 하나만 딱 나 하나만 있다. 자동차 안의 관점을 추구하는 것이다. 운전자 관점을 주관, 운전자 밖의 관점을 객관이라고 말한다.

 

주관의 관점을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평생 이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면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 살면 힘든 것은 내 마음이 운전자 관점에서 빠져나가서 밖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운전자 밖의 세계는 비교의 세계, 우월과 열등의 세계이다. 잘 나고, 못나고 비교의 세계이다. 이것이 객관의 세계이다. 그러나 주관으로 돌아오면 비교는 불가능하다. 내가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에 잘나고, 못난 것이 없다.

 

마음이 힘들 때 자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나를 객관화했기 때문이다. 소리와 빛은 공간을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리는 공간이 있다는 토대 위에서 소리가 생성된다. 눈에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공간을 통해서 들어오는 2가지 지각 즉 소리와 형상은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게 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지각 기관이 6개이지만 그중에서 2개만 사용하면 미래도 상상할 수 있고 과거도 회상할 수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시가, 청각 2개의 감각으로 사용 가능 한 것이다. 2개의 지각이 나에게 번민과 고통을 준다. 나를 객관화 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관적 시점에서는 공간이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다. 주관은 지금, 이 순간만 있고 객관은 과거 미래가 있다.

 

다시 정리하면, 객관의 세계는 비교가 가능하다. 내 차가 작은 차라면 이보다 큰 차가 있고 벤츠가 있고 작은 차가 있다. 열등감도 있고 우월감도 있다. 이렇게 객관에 생긴다. 객관의 세계는 있다. 없다. 더 잘생겼다. 혹은 나보다 이쁘다, 못생겼다.’ 등 비교의 세계이다. 지금 이 시대가 이 비교의 시대이다. 생각이 운전자 관점에서 빠져나와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비교하면서 산다.

 

그런데 편안하려면 운전자 관점 즉 주관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시점이다. 부처님께 일체가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면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색수상행식 오온이라고 답하신다.

일체는 12처이다. 일체는 18게이다. 일체는 5온’이라고만 답하신다. 반드시 당신 눈에만 비친 세상을 이야기하신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부처님의 시점, 주관을 회복해야 한다. 운전석에 앉으면 핸들도 하나이고, 기어도 하나이고, 백밀러도 하나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이 모두 하나이다.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컵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하나밖에 없는 컵이다. 남이 본 컵을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설탕 혹은 사탕을 먹을 때 그 맛은 딱 하나밖에 없다. 남이 맛본 단맛을 내가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다. 모든 체험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유일무일 한 체험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비교하면서 우월감, 열등감에 빠진다.

 

불교인들이 우리 사회에 운전자 관점으로 살기 운동, 비교하지 않기 운동’, ‘자기 마음으로 침잠하기 운동’, ‘자기 생명의 본질로 침잠하기 운동을 해야 한다. 자기 생명의 본질도 이 운전자 관점에서 들어갈 수 있다.

 

사회의 갈등이 해결 방안은 서로 대화하고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인이 이 운전자 관점에 들어가서 자기의 생명, , 죽음,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다시 회복하면 그 흐름이 이어져서 전부 다 서로서로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하지 않고 밖에 나와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크다, 작다하면서 싸우게 되고 남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설명하는 것은 비교 불가능한 것, 즉 공과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연기하면 비교이고 연열하면 비교가 사라진 것이다.

 

김성철교수님 15강 ppt 자료 중에서

 

 

가운데 연필을 비교해보면 아래쪽과 비교하면 짧고 위쪽의 연필과 비교해보면 가운데 연필이 길다

가운데 연필이 실제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다.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비장비단(非長非短), 공 사상이다. 비교하는 것은 연기법이다. 중관학의 개념의 실체성을 비판하는 논법을 추구했는데 그 토대는 공과 연기이다. 더 응용하면 우리가 살아갈 때 비교 대상을 사라지게 하는 주관적 시점을 회복할 때 공성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운전자 관점으로 살기]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다. 열등감도 없고 우월감도 없이 살아간다

세상의 중심,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청정한 스님들의 삶이다.

 

객관적 시점에서는 비교하기 때문에, 우월감, 열등감이 생겨서 삶이 피곤하다. 운전자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절대, 하나뿐이기 때문에 비교 불가능하다. 그래서 누구든지 개인 개인이 다 행복하다. 누구든지 개인 개인이 다 부처님이다. 개인 개인이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우주의 중심이다. 모든 것이 유일무일한 절대적 체험이다. 이것은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원래, 처음부터 지금, 현재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우고서 객관화 즉 생각이 운전자 관점에서 빠져나와 바깥세상에서 남과 비교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 나 혼자 살고 있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다. 마치 꿈속에서 혼자 꿈꾸듯이 남과 절대 같이 못 산다. 운전자 관점만 투철하면 누더기 옷 입고, 하루 한 끼만 먹어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열등감도 없이 의연하다.

 

화엄의 일즉일체, 일체의 통찰이 생길 때 나의 분별적 고민이 사라진다. 화엄사상-일즉일체, 반야의 공사상-無의 사상 이 두 가지가 양극단을 해체하는 통찰인데 절대긍정과 절대 긍정 즉 이 두 가지는 우리의 분별을 타파하는 통찰이다. ‘모든 것이다.’ 해도 분별이 타파되고, ‘아예 없다고 해도 분별이 타파된다. 세속에서는 이런 분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고민이 생기는 것은 분별 때문이다. 그런데 화엄과 반야를 종합해서 고민을 없애주는 심리 상담 공식을 만든 것이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누구나 다 그래이다. 이것이 반야의 공이다. 이것이 화엄의 일즉일체이다. 화엄사상과 반야사상을 종합하면 나만 그래.’하는 생각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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