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6일 월요일]
방편과 본질을 알아야한다.
수행은 방편이다.
본질은 깨달음이다.
부처님은 깨달아서 방편을 설하셨다.
이해해서 아는 것은 견해에 불과하다.
살아보니 안다.
주관적인 착각에 빠지지 않게 오랜 세월 공부하고 탁마해야한다.
자기 공부에 자기가 갇히지 않게 열어놓아야 한다.
꿩은 자기 울음 소리에 죽는다.
포기하지 않는 것.
나도 모르게 한 것이다.
무엇을 하든 도심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p14(전자책)
그러나 근본을 찾지 않고 형상에 집착하여 마음 밖에서 진리의 모습을 찾는다면,
지혜로운 사람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니다.
진실. 진리르 찾는 것이다.
[화엄론]에서는
"일승에서 나오는 가르침은 근본지혜로 이루어진 것이니 온갖 지혜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일승.
깨달음 밖에 없다. 마음 밖에 없다.
시방세계의 크기가 허공과 같아 일승의 경계가 되므로
▶깨달음의 바운더리가 없다.
둘이 없다.
전부 이것 뿐이다.
모든 부처님과 중생의 마음 경계가 서로 겹쳐져 있는 모습(무애:바운드리가 없다)이
마치 그림자가 거듭 겹쳐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경험이다.
머뭄 없이 머문다.
느낌 없이 느낀다.
앎이 없이 안다.
실감. 진짜 체험. 근본체험.
통증의 근본이 무엇인가?
감각의 근본이 무엇인가?
주객이 따로 없다.
절대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대상만이 안다.(알 수 있다. 분리되어 있으므로)
자기가 자기를 알수 없다.
컵만 있으면 컵이 사라진다.
이것이 불이 不二 이다.
(자기가 자기를 알수 없다. 전체이므로)
느낌과 생각이 희미한 것이 사라진다.
우리는 이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일승시대에서는
"부처있는 곳은 빨리 지나가고 부처가 없는 곳은 머물지 마라."
유무. 분별에 좇지마라.
無
이런때.
분별 없는 때.
여래는 이미 있는 것이다.
경전.
진짜 경전.
묵과 종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의경. 금강경. 원각경. 화엄경..
이것은 이름이다.
근본이냐. 방편이냐?
방편을 따르지 말고 근본을 얻으라.
건물. 종교행위. 불상. 찬송가. 예불문. 예식... 모두 방편이다.
방편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근본은 완료되어 있다.
언제나 완성되어 있다.
바뀌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의 방편이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
배우지 않고, 태어나서 익히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미 도달 했다.
나는 이미 보았다.
한번도 집 떠난 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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