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6일 월요일]
Q&A
경전의 예언. 이적의 기록?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가려볼 수 있어야한다.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으면
올바른 답을 할 수 있다.
본분사.
지금 이렇게 훤희 드러나 있는 것이 본분사이다.
찾고 구하면 이법이다.
본인이 분열되어서 찾고 구하는 것이 망상임을 모르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무명이다.
주장자를 들어보이는 것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 개념은 거짓이다.
이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직접한 체험이다.
내가 한다는 것은 생각이다.
이것을 말로 한다면
저절로이다.
뚜렷이 느껴지는 것 같으니까 그것이 나 인줄안다.
무언가에 의해서 경험되고 있다.
경함하게 하는 것.
직접적인것.
이분법.
허망한 망상하다.
이것을 보아야 한다.
대상에 끄달리지말고
대상에 대한 인식. 자각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절대 알 수 없다.
그래서 생각을 쉬라고 하는 것이다.
생각을 쉴 수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계속 선생님처럼 생각을 쉬라고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고, 얻으려고 한다.
이것이 아는 바는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오감을 통해서 경험하거나 생각하는 것 외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아니다.
선수멸진. 아무 맛이없다. 알 수없다.
각의 본질.
순수한 앎.
그래서 곧장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냥 이것이다.
강렬한 체험. 명확한 인식은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미세한 의지처.
우리는 느낌 아니면 생각에 의지한다.
경계. 대상을 쫓을려고 한다.
무상하다.
무의식적인 분별.
자동화된 분별.
공업(함께 공동적인 업)이다.
연기.
인생은 꿈과 같다.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인류의 문제는 이것을 모르는데서 온다.
따로 있다는 근본무명이다.
이분법으로 10년공부를 하면
허상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윤회.
그리고 해탈.
그래서 부처님께서 분명히 보라고 하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
신통. 신령하게 통하는 것은
인식의 한계가 터져버리는 것이다.
진리는 생각의 대상이 아니다.
진리는 무엇에 대해서 이해되거나
성취되거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희론의 적멸.
논쟁이 없다.
모르니까 따지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은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논을 짓는다는 것은 진리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추론의 적멸.
체험되고 있으므로 논리를 지을 수 없다.
(being)
파사현정.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논리를 따라가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힌두교.
미개하고 야만적인 종교였을 당시
2500년대 불교 태어날 당시 도시화. 상업화. 교육화 되고 있는 과정중에 있었음.
자유사상가 출현. 그중에 한명이 석가이다.
윤회. 업은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부처님도 자유로운 사상가 출현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연기 세계 전체가 바로 법이다.
허망한 것 전체가 법이다.
허망한 것과 법이 둘이 아니다.
체험적으로 말하면 '이것'이라고 말한다.
취사간택이 없다.
선택은 곧 포기이다.
포기는 곧 선택이다.
쌍으로 연기적으로 있다.
무위.
아무것도 선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
수행은 자아를 강화 시킨다.
내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 감정. 현상 변화 속에서 법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법하게 된다.
금강경.
경전이 아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이 금강경이다.
느낌이나 생각 이전의
이것은 무엇인가?
본래.
일체법이 불법이다.
법마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비법이야...
스스로 업을 짓지 말라.
분별을 내려놓아야 한다.
존재하고 있음의 자연스러운 상태.
늘 다만 반복하는 것.
오늘. 지금의 감각은 무엇인가?
이것이다.
here and now
환영만 지우면 각이다.
환은 이룰 수 있다.
생멸이 있다.
기본 자세가 중요하다.
기본기가 안되면 아무리 배워도 제자리이다.
석가도 몰랐거늘 가섭인들 전할쏘냐
진리는 내 노력에 의해서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함을 수행을 통해서 완전함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인과적이다.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다.
수행과 깨달음은 하나이다.
깨달음이 수행이다.
수행이 그대로 깨달음이다.
본질.
일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본래 깨달음.
공부를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찾는 자가 있는 한 찾는 것은 저 멀리 있다.
파랑새 이야기.
자기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류는 이미 이 답을 알고 있다.
일체 중생이 이 한마음이다.
모두 '이러함' 이다.
이 마음. 전체.
감지되는 것을 나라고 삼는다.
자동적으로 분별한다.
느끼는 주체는 느껴지는 대상과 떨어져있는가?
.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가지 못한다.'
나=I
부처, 중생 마음은 하나다.
나를 따라라.
나에게로 돌아오라.
이분법.
분별심.
과학의 발전.
아만.
자본주의 발달.
나만 생각하는 사람들.
내가 따로 있다는 근본무명
=
고
단 한 사람만이라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 전체 우주에 깨달음이다.
자기로 돌아와야한다.
아무것도 쥐어 잡을 것이 없다.
모르고, 못느끼면 불안한 것이 인간이다.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야 한다.
우리는 생각 속에 불안해 한다.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될 것이라고 불안해 한다.
살아도 내가 죽고, 죽어도 내가 죽는다.
나홀로 되는 것이다.
독존.
나 혼자 밖에 없다.
마음 밖에 없다.
신 밖에 없다.
나는 나다.
우주 만유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
물질과 정신 속에서 찾는 것은 허망한 이분법이다.
... 아닌 것이 없다.
내가 했다.
아상이다.
깨달음은 단 한순간의 사건. 이벤트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과정이다.
향상일로
간절한 마음.
고통과 절망이 공부를 도와준다.
번뇌의 진흙탕 속의 중생이라야만 불법을 일으킬 따름입니다.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 지혜의 보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유마경 불도품 참조)
Q&A
체험하라고 하셨는데 ...
본질을 모르면 체험. 현상으로 하려고 한다.
체험에 집착하여 그 체험이 깨달음인줄 안다.
체험은 깨달음이 아니다.
순수한 깨달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상대적인 체험이 아니다.
자기 깨달음은 분명하게 의심해야한다.
지견으로 대충 안다고 하는 것을 방지하게 하려고
체험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Q&A
경계체험과 근본체험의 구분...
근본체험은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
.
경계처험을 붙잡으면 공부가 1도 늘지 않는다.
아무것도 붙잡지 않으면
알음알이가 아니라
... 이것은 자기가 체험하면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분기점에 있는 체험이 아니다.
생겨나는 체험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합일되는 체험이 아니다.
직접해 보아야 한다.
(이심전심.) 추구심이 쉬어진다. 말귀를 알아듣게 된다.
자아는 느낌과 생각의 무더기이다.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인간이어서 아무 느낌. 생각이 없는 것을 못견딘다.
이것을 견뎌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할려는 마음이 남아 있으니 못버티는 것이다.
'내가...'
고통을 부른다.
고통이다.
경계체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진짜 신심은 깨달아야만 한다.
자기가 고통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움직음을 보는 것이 공부이다.
아프지만 보아야 한다.
보아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계.
안목이 생기면 저절로 계가 성취된다.
그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지혜로워진다.
깨달으면 저절로 수행하계된다.
깨달으면 계.정.혜가 성취된다.
느낌없는 느낌.
앎이 없는 앎.
순수하다.
대상이 아니다.
앎의 대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지의 지.
하느님을 알려면 무지의 구름속으로 들어가라.
안다. 모른다는 이원성이 사라진다.
생각만 내려놓으면 된다.
본래상태의 회복.
구경의 깨달음.
그래서 스스로 안다.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에게 이미 성취되어 있는 것이다.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향.
공부를 했으면 돌려주어야한다.
공부는 내 것이 아니다.
보시.
공부를 하려면 큰공부. 대승을 해야한다.
사람에 따라 공부의 인연이 있다.
인간이라는 한계.
이것을 벗어나면 놀랄 것이다.
신비로움.
개체성과 전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쌍으로 굴린다.
중생의 삶이 없으면
인생의 아름다움이 없다.
한마음.
모든 인생의 경험이 다 똑 같은 맛이다.
매운맛. 단맛. 쓴맛. 신맛... 등...
일체평등.
차별이 없다.
마음 껏 보고, 마음 껏 즐기되 집찹이 없다.
인생은 아름답다.
삶은 살아 볼 만하다.
좋은 경험이다.
나는 나 그 자체로 완벽하다.
나는 100% 나이다.
자기를 깨달으면
일체중생의 마음을 깨닫는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 없이 선행을 하게된다.
내가 나다 속에 있으면 성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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