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8일 수요일]
Let it be.
Let it go.
'도'란 알지 못함으로써 안다.
모름으로써 안다.
자연스러운 상태.
노력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소리가 들리고,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
경험되는 대상과 경험의 배경(밑바탕)
말로는 설명할 수 있다.
사실을 보면 의식과 의식의 대상을 분리할 수 있는가?
매순 느껴지는 육체감감. 오온.
오온이 자아이다.
오온이 대상이다.
오온은 관찰가능하다.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것이다.
본래 잡을 것이 없다.
전부 여기서 다 드러나고 있다.
그냥 지금 이대로 쉬라.
문학에서
내용없는 형식이 없고
형식이 없는 내용이 없다.
연기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의식의 내용은 잘 안다.
보이는 대상이든 냄새든, 느낌이든, 맛이든
내용없는 공성(형식)은 없다.
모든 내용이 순수한 형식이다.
오온개공.
내용은 제행제법으로 무상이고 무아이다.
내용은 경험되지만 없는 것이다.
오온개공.
할 일이 없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 사실은 인정한다.
보인다. 들린다. 냄새 나고, 생각이 난다.
이것들은 무상하다.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은 있지만,
경험은 있지만
보는 자도 듣는자도 경험하는 자도 없다.
보는자. 보이는 것도 없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반야심경.
우리의 경험이 오온덩어리로 되어 있으므로
오온이 공임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노력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개오.
저절로 열린다.
깨달음이 저절로 찾아 온다.
드러나 있는데
'나'라는 생각 때문에 가려져 있다.
잘 관찰해 보라.
어떤 체험상에 매몰되지 마라.
경험은 상이다.
우리는 경험의 내용만 찾는다.
행위자가 '나라고 믿는다.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은 실천이 없다.
경험되지만 실체가 없다.
생각은 자각이 아니다.
생각은 자각의 그림자이다.
삶의 내용물은 바뀐다.
경험은 바뀐다.
우리는 변화의 측면에서 보려고 한다.
우리는 자아 감각이 사라진 뿅 간 상태를 추구한다.
이 자리를 대상화하면
잡았다. 보았다 잃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잡았다. 보았다. 잃었다 할 것이 없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인위적인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드러나 있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자아가 강하다.
수행자아.
아만이다.
진정한 수행은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수행이다.
부처님이 그러하셨다.
그래서 육조단경에서는 깨달음만 말한다.
방편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시적인 방편.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
이것 뿐.
이것이 전부이어야 한다.
자아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정혜결사문은
부처님의 정법을 선정과 지혜로 본다.
불법이 선정과 지혜라는 것은
우리의 본래 모습. 본래 성품이 선정과 지혜라는 것이다.
알 것 없는 이자리.
여기서 생각이 움직이지 않으면 멸진정이다.
생각과 느낌을 대상으로 하는 사람은
생각과 느낌을 소멸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멸진정이 아니다.
생각과 느낌은 실체가 아니다.
오온개공법
오온은 원래 공이다.
오온을 통해서 공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오온즉공
색즉시공
보라.
보면 끝난다.
본다는 말이 깨닫는다는 것이다.
깨달음 오. 悟
깨달음은 저절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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