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화와 행복,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밖으로 향합니다. 더 나은 경험을 추구하고, 더 깊은 지식을 쌓고,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려 애쓰지만, 마음 깊은 곳의 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습니다. 마치 끝없는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해답은 늘 저만치 앞에 있는 듯 보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해답이, 사실은 우리의 모든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가장 평범한 현실 속에 있다면 어떨까요? 이 글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통념을 송두리째 뒤집는, 놀랍고도 날카로운 지혜에 관한 몽지 선생님의 운문록 3 강의 내용입니다. 고통을 끝내고 진정한 내면의 자유로 이끄는 4가지 핵심 통찰을 통해,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었으나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1. 진짜 체험은 가장 평범한 '지금 이 순간'이다
많은 이들이 깨달음이나 진리를 신비로운 황홀경이나 특별한 영적 체험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나’의 영적 여정을 증명해 줄 특별한 사건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심오한 역설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찾는 궁극적인 ‘그것’은 체험의 대상이 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경험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 바탕, 바로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지극히 평범한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이것은 ‘체험한다, 안 한다’의 차원을 넘어선 근원적인 사실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체험’하려는 순간, 이미 ‘체험하는 나’와 ‘체험되는 대상’으로 세상이 나뉘어 버립니다. 진실은 그 분리 이전에 있습니다.
지난 공부의 여정을 돌아보면 실소가 터져 나옵니다. 왜 그리 헤맸던가, 모든 것은 늘 눈앞의 이 사실이었는데. 이 통찰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것이 단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탐구가 그 자리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금 제가 공부해 왔던 여정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코웃음이 나요. 왜 그리 헤맸던가. 그냥 눈앞의 이 사실인데. 근데 희한하죠. 안 보이는 사람한테 전혀 안 보여요.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몰라요.
2. 모든 것을 재고 판단하는 '저울대'를 꺾어버려라
우리의 고통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그것은 끊임없이 모든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비교하는 마음의 작용에서 시작됩니다. 이 마음을 ‘저울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것, 저것은 나쁜 것. 이것은 이로운 것, 저것은 해로운 것. 이 저울질이 바로 ‘나’라고 하는 자아(自我)의 구조 그 자체입니다. 자아는 비교와 판단 없이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공부의 끝이란 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저울대’ 자체가 부러져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울대가 사라지면 모든 것의 무게는 ‘제로(0)’가 됩니다. 좋다, 나쁘다를 잴 기준이 없으니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 상태를 ‘절대 평정’이라 부릅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삶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저 ‘견딜 만하고 살만해지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선어록에 보면 저울 때를 꺾어 버린다 이런 말이 나와요. 저울이 재는 거잖아. 그걸 확 꺾어 버린다니까. 그게 이거예요. 그게 공부의 끝이라고. 그 저울 때가 사라지는 거야. 그게 자아예요.
3. 고통의 유통기한은 짧다, 연장하는 것은 당신의 집착이다
아무리 격렬한 슬픔이나 뼈아픈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 감정 자체가 지속되는 시간은 사실 매우 짧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긴 시간 고통받는 이유는 감정 그 자체의 힘 때문이 아닙니다. 지나간 감정과 생각을 ‘나의 것’이라고 믿고 계속해서 붙잡는 ‘집착’이 고통의 유통기한을 무한정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이 집착이야말로 ‘나’라는 감각을 유지하려는 자아의 생존 본능입니다.
바다가 송장을 밀어내듯, 우리의 자연스러운 마음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오래 붙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떠내려간 고통의 기억을 다시 끌어와 ‘나의 슬픔’이라 이름 붙이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냉정하게 자문해 보십시오. 우리는 진정 무엇 때문에 슬퍼하고 있습니까? 떠나간 그 사람 때문입니까, 아니면 ‘나의’ 소망이 좌절된 것 때문입니까? 슬픔의 근원에는 지독한 이기심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놀랍도록 해방적인 깨달음입니다. 고통을 멈추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신, 그저 그것을 붙잡으려는 저항과 집착을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고통은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그 자리에 자유가 드러납니다.
아무리 강렬한 고통도 지속 시간은 짧아요. 근데 그걸 계속 이어간다니까. 그걸 이제 통찰해 내고 거기서 자기가 자유를 얻는 거예요.
4. 가장 자유로워지는 길, '살아있을 때 죽어버리는 것'
지금까지의 통찰은 가장 강력하고 역설적인 하나의 결론으로 향합니다. 바로 ‘살아서 먼저 죽는 공부’입니다. 이것은 앞선 모든 내려놓음의 완성이자, ‘나’라고 믿어왔던 허상적인 자아의 완전한 해체입니다.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재산, 나의 관계, 이 모든 ‘나의 것’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심각한 일이란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있는 송장’이 되면, 삶은 놀랍도록 가벼워집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상실에 대한 불안도 사라집니다. 그때부터의 삶은 ‘덤’으로 주어집니다. 이미 죽었어야 할 내가 보고, 죽었어야 할 내가 듣고 있습니다. 가장 평범한 숨결, 눈앞의 풍경 하나하나가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서 먼저 죽는게 공부라니까. 살아 있을 때 그냥 죽어 버리는 거야. ... 다 포기하라니까. 그러면 삶이 가벼워지는 이상한 일이 펼쳐져요. 심각한 게 하나도 없어. 죽은 사람한테 뭐가 심각해요?
결론: 이제 당신의 차례
오늘 살펴본 4가지 통찰은 결국 하나의 진실을 가리킵니다. 특별한 경험을 찾아 헤매던 ‘나’, 모든 것을 판단하던 ‘나’, 고통을 붙들던 ‘나’, 죽기를 두려워하던 ‘나’라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지혜가 당신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완벽한 생명의 덩어리, 완벽한 존재 그 자체입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문제가, 사실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던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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