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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선공부모임_10년결사/저녁공부

당신이 좇는 깨달음은 함정이다: 운문록4

by 마음길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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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더 나은 삶, 더 깊은 평화, 혹은 막연하게나마 ‘무언가 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이끌려 영적인 길에 들어서기도 합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스승을 찾으며 그 ‘무언가’를 ‘깨달음’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추구하는 그 ‘깨달음’에 대한 통념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면 어떨까요? 만약 깨달음을 향한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면 어떨까요? 이 글은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한 선(禪) 지도자의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얻은 5가지 충격적인 진실을 소개합니다. 이 진실들은 당신의 영적 여정을 송두리째 흔들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좇는 깨달음은 함정이다: 운문록4
당신이 좇는 깨달음은 함정이다: 운문록4

 

1. 깨달음은 현실에서 아무 쓸모가 없다

영적 공부의 정점에 있다는 깨달음은 놀랍게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깨달음이 마음의 고통이나 실존적 번뇌를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지독한 치통을 낫게 하거나 당장 굶주린 배를 채울 라면 한 봉지를 사주지는 못합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치를 깨치는 것보다 10억 원을 버는 것이 훨씬 더 실용적이고 대단한 일일 수 있습니다. 이는 영적 성취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종류의 가치인지를 명확히 보게 하는 역설적인 진실입니다.

이치를 깨친다는 것은 실제로 현실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깨달음보다 현실적으로 보면 차라리 한 10억쯤 돈 버는 게 더 대단할 거예요.  왜냐면이 깨달음은 현실적으로 하나도 못 써요.

2. '나'라는 생각 자체가 모든 고통의 시작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수십 년간 이 몸과 생각, 감정의 주인을 ‘나’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야말로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는 가장 근본적인 착각입니다. ‘이것이 나다’라는 잘못된 전제 위에서는 그 어떤 공부도, 그 어떤 노력도 결국 헛수고로 돌아갈 뿐입니다.

이는 마치 내가 모든 감정과 경험의 소유자라고 적힌 계약서에 무심코 서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서명하는 순간, 기쁨뿐만 아니라 슬픔, 분노 같은 모든 감정의 빚에 대한 청구서가 날아들고, 당신은 그 빚을 갚아야 할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행위는 있지만 행위자는 없다’는 가르침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합니다. 고통이라는 현상은 일어나지만, 그 고통을 소유하고 책임져야 할 ‘나’는 본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실수 뭡니까?... 다 자기가 이것을 자기라고 여겨요... 벌써 전제가 이미 이게 나면은 공부는 아무리 해도 헛방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3. 완전해지려는 노력이 당신을 가로막는다

많은 영적 가르침은 “당신은 본래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듣고 그 ‘완전함’을 미래의 목표로 삼아 노력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길에서 벗어납니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행위 자체가 ‘나는 지금 불완전하다’는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노력으로 획득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진리를 미래의 목표로 설정하는 순간,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시간을 좇게 됩니다. 스승의 말처럼, 깨달음이 ‘미래’에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영원히 놓치게 됩니다.

본래 완전하다고 했지 완전해지라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근데 그 말을 듣고 그걸 목표로 삼으면 그 말에, 그 말이 가리키는 바와 어긋나게 되니까, 그래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4. 당신의 '깨달음'은 깊은 바닷속 환각일 수 있다

영화 <47미터>에는 상어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한 주인공이 마침내 구조선 위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전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 모든 탈출 과정은 사실 깊은 바닷속에서 질소 중독으로 인해 겪은 생생한 환각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여전히 47미터 아래, 산소가 거의 바닥난 철창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섬뜩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성취했다고 믿는 그 ‘깨달음’, 그 평화로운 경지가 사실은 또 다른 미세한 자아의 함정이자 깊은 무의식 속 환각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런 말에 분노가 치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항복이란, 내가 이룬 모든 영적 성취마저도 환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깨달았다는 건 환각일 수 있습니다. 다 버리세요. 다시 원점으로 각오 돼 있어요? 다시 출발해야 됩니다.

5. 스승의 가르침마저도 버려야 할 '실수'다

선(禪)에는 ‘불조패궐처(佛祖敗棺處)’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부처와 조사가 실수한 지점’이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마저도 입을 열어 진리를 설명하는 순간,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통찰입니다. 왜냐하면 말과 개념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달이 아닌 손가락을 붙잡고 그것이 진리라고 착각합니다.

진정한 공부는 스승의 가르침이라는 밧줄을 끊는 것을 넘어, 마침내 ‘헛소리 그만하시오’라고 외치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가르침에 대한 의존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마지막 성벽이자, 동시에 우리를 가두는 마지막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불조가 실수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로 이게 운문이 실수한 거예요. 입을 열어 버렸어. 깨달아야 된다고 말해 버렸어. 틀렸어. 그게 불조패궐처(佛祖敗棺處)입니다. 그걸 알아본 사람은 거기서 싹 벗어납니다.

결론

이 5가지 진실은 각기 다른 교훈이 아니라, 스승의 주장자에서 내리치는 다섯 번의 일격과 같습니다. 각 일격은 동일한 하나의 환상을 겨냥합니다. 바로 ‘여기에 있는 불완전한 나’가 노력해서 ‘저기에 있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첫 번째 진실은 목표의 가치를 부수고,

두 번째는 구도자의 정체성을 부수며,

세 번째는 추구의 방법을 부숩니다.

네 번째는 도달했다는 확신마저 부수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우리가 의지했던 지도 그 자체의 권위까지 산산조각 냅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잃는 데서 발견됩니다.

이 글을 덮기 전,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십시오.

“만약 당신이 자신과 영적 여정에 대해 믿어왔던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선림고경총서 / 운문록
선림고경총서 / 운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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