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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중관학노트

판단의 사실성 비판 - 중관학16강

by 마음길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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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사실성 비판]

 

사구(四句) 판단 :

1. 그것은 A이다.

2. 그것은 A가 아니다.

3. 그것은 A이면서 A가 아니다.

4. 그것은 A도 아니고 A가 아닌 것도 아니다.

 

판단의 종류에는 4가지가 있다. 이것을 사구(四句-4가지 구절)라고 한다. 공식화 하면 1~4구인데 1구는 그것은 A이다.(그것은 컵이다.) 2구는 그것은 A가 아니다.(그것은 컵이 아니다.) 부정은 2구이다. 3구는 1구와 2구를 합한 것으로 그것은 A이면서 A가 아니다.(그것은 컵이면서 컵이 아니다.) 4구는 그것은 A도 아니고 A가 아닌 것도 아니다.(그것은 컵도 아니고 컵이 아닌 것도 아니다)

 

사람이 머리 굴려서 만들 수 있는 판단의 종류가 이 4개 밖에 없다. 4구는 중관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중관학 이전부터 부처님 당시에도 인도 사람들이 만든 사고의 유형 4가지이다. 인도 종교계 전통 사상에서 내려오는 판단의 종류의 4가지이다.

 

질문하는 방식이 4구이다. 여래가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계시면서 안 계십니까? 계신 것도 아니고, 안 계신 것도 아닙니까? 이에 대해서 산자야 벨라티뿟다는 답을 하지 않고 회피하기만 한다. 세상과 세간이 상주합니까? 무상합니까? 상주하면서 무상합니까?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닙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패턴이 4구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도 똑같은 4구 패턴으로 여쭈어본다. 정신과 육체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으면서 다릅니까?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습니까? 이 질문에 부처님께서도 답을 하지 않으신다. 침묵 후에 반드시 연기법을 설하신다. 산자야 벨라티뿟다는 답을 하지 않고 도망가는데 부처님께서는 답을 안 하시고 침묵하신 후 연기법을 설하신다. 왜냐하면 4구로 질문하는 것은 연기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분별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이다. 질문 그 자체를 건드린다. 물음 자체를 회광반조(回光返照), 서치라이트로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물어봤더니 그것으로 그 물음 자세를 비추어보라는 것이다. 이 불교의 방식은 선 불교도 마찬가지고 중관학의 방식도 마찬가지고 그 문제 자체를 문제 시 한다.

 

문제 자체를 해소하는 게 중관학이다. 문제 자체를 해소하는 것이 부처님이 침묵하셨다가 연기법을 설해서 잘못 물어봤구나 하고 문제 자체를 해소하는 게 선승들의 ’, ‘’, 선문답이다. 심각하게 물어봤는데 엉뚱한 얘기 하든지, 막 고함지르든지 한 대 때려버린다. 이것이 불교이다. 문제 자체가 다 뿌리가 뽑힌다. 깨달음의 도로 한순간에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심각하게 몇 달간을 고민했던 어마어마한 생각을 한순간에 허물기 때문에 끝나는 것이다. 집을 지을 쌓는 것은 오래 걸린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쌓는 것은 오래 걸린다. 그러나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생각을 무너뜨리는 공 사상과 반야사상도 그렇다. 부처님의 침묵도 같은 구조이다. 앞서 이야기한 고따미의 이야기처럼 생각 무너뜨리는 게 불교의 여러 해결 방법이다.

 

4 가지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구조는 불교 발생 이전부터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방식이 4구 판단이다.

 

우주의 끝이 있나 없나 이것도 4구로 할 수 있다.

1구 끝이 있다.

2구 끝이 없다. 부정이다.

3구 끝이 있으면서 없다.

4구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4구이다.

 

마음과 뇌는 뇌에서 정신(마음)이 나온다. 마음이 뇌랑 같은 것이 아니다. 마음과 뇌가 같은가? 같다. 다르다.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이것도 4구이다.

 

현대 심리 철학, 뇌과학은 4구 중 하나이다. 뇌과학자들이 연구해서 뇌와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답을 내고 있는데 그것은 다 4구 가운데 하나이다. 거기에서 학파가 갈린다.

 

이제 4구 비판을 살펴 보겠다.

 

1.우주에는 끝이 있다.

2.우주에는 끝이 없다.

3.우주에는 끝이 있으면서 없다.

4.우주에는 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우주에는 끝이 있다.

1구적인 사고방식. 우주에는 끝이 없다.

2구적인 사고방식. 우주에는 끝이 있으면서 없다.

3구적인 사고방식. 우주에는 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4구적인 사고방식이다.

 

1.정신과 육체는 같다.

2.정신과 육체는 다르다.

3,정신과 육체는 같으면서 다르다.

4.정신과 육체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정신과 육체는 같다. 정신과 육체는 다르다 정신과 육체는 같으면서 다르다. 정신과 육체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이것이 4구이다. 그러나 아직은 중관학은 아니다. 그냥 4구일 뿐이다. 중관학은 4구 비판이 중관학이다. 4구가 중관학이 아니다. 4구 비판의 논리가 중관 논리이다. 사고 비판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지 그러니까 반 논리학이 중관학이다. 중관학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게 4구이다.

 

중관학은 4구를 비판하는 것이고 4구는 일반 사람들, 철학자가 쓰고 있는 잘못된 분별이다. 이렇게 구분해야 한다.

 

[사구의 명칭]

4구를 전통적으로 불교 논사에서 이름을 붙인 게 있다. 1구를 증익견(增益見), 2구는 손감견(損減見), 3구는 상위견(相違見), 4구는 희론견(戱論見) 사건은 희원견이다.

 

이것은 탄허 스님 법문에서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에서 발견한 것이다.

유식 논사인 세친과 호법 스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중관과 유식론은 대립하지 않는다. 현대 학자들이 자기들 철학처럼 불교 사상의 전개도 중관학 다음에 유식이 나오니까 유식이 중관학을 비판한다고 말하고 또한 중관학은 앞의 아비달마를 비판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아니다. 아비달마를 계승한 것이 중관학이고 중관학을 계승한 것이 유식학이다. 철저하게 유식 논사들이 중관학을 떠받든 사람들이다. 중관학을 비판하지 않는다. 현대 불교학 개론서 조심해야 한다.

 

증익견, 손감견, 상위견, 희론견이 세친 스님과 호법 스님들 유식 논사 책에 나온다.

의미 중복이 증익이다. 의미가 중복되고, 증가하고 덧붙은 것이다. 사실 위배가 덜어내고 감소시키는 손감이다. 사실을 이것인데 그것을 빼버리는 것이다. 상호 모순의 오류는 상위서로 위배되는 것이고 말장난의 오류가 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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