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7(전자책)
허망한 날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오랜 전생 과거부터 몸과 마음으로 온갖 고생을 속절없이 받았으나,
아무런 이득도 없이 현재에도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만 가득하고,
미래에 받을 고통도 그 끝이 없습니다.
▶전생 체험.
본다.. 는 것은
지금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을 실재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각이라는 것은 감각이 있으면 없는 줄알고
감각이 없으면 없는 줄 아는 그것이다.
감각이 없는 것을 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확장되고 신체 감각에서 벗어난다.
감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깨달아서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인가?
지금 편하게 살아라.
이처럼 괴로움과 번뇌는 버리기 어렵고 떠나기도 어려운 것인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무지의 무서움.
회오리바람처럼 세월은 자기도 모르게 휘몰아쳐 늙음을 재촉하니,
(마음의 바탕)을 아직 닦지도 못했는데 죽음의 문으로
시나브로(자기도 모르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공부를 아려면 무상을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붙잡을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무상을 깨쳐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욕심을 부리며 성내고 질투하며,
아만방일(잘난 척 함부로 놀면서.게으르게)하면서
명예와 이익을 찾느라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천하를 논하고 있는 것입니까.
▶요즘은 이것을 너무 당연한줄 안다.
p18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반드시 삼가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알고 참회하며,
조화롭게 삶의 균형을 잡아 밤낮으로 부지런히 (공부)하여 온갖 고통을 어서 빨리 여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
신심은 자아이다.
오로지 부처님과 조사 스님의 진실한 말씀에만 의지하여 밝은 거울로 삼아,
자신의 마음은 본디부터 신령스레 밝고 맑아 깨끗하여,
번뇌의 성품이 공인 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직접적인 앎이다.
자신이 곧 마음이다.
나의 본성이 마음이다.
나의 본성이 마음의 직접적인 경험이다.
자기가 자기를 경험하기 위해서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신비이다.
환이 곧 각이다.
색공이 둘이 아니다.
본연청정을 깨닫는 것이다.
선업도 업이다.
내가 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직 할 뿐.
생명은 하나 뿐이다.
풍선을 터뜨려 보아라.
각양각색의 풍선을 터뜨리면 모두 같은 바탕. 허공이다.
몸은 연령대별로 변한다.
자아는 지속감이 유지 될 때만 자아이다.
지속감이 없어지면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치매환자분들)
자아는 그래서 지속감을 유지하려고 한다.(과거. 기억)
나는 꼭 이래야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힘든 것이다.
나아가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속속들이 가려(지혜)
자기의 소견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에 어지로운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성성한 마음(불유혼체:혼미하게 막히지 않고)으로
단견(단멸론)을 내지 않고 공과 유에도 집착하지 않으니,(일체집착없음)
깨달음의 지혜로 항상 밝고 깨끗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큰 원력을 세워 모든 중생을 제도해야 하니, 이 한 몸만 해탈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정과 지혜를 고루 닦아야 한다.
정혜를 쌍수한다.
원(바랄)력.남도(이롭고 남도 이롭게하는 큰 바램)
성프란치스코
'주님, 저를 도구로 써주소서.'
수도자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아서 그 무엇이 될 수 없고,
세상을 위한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
잘못 된 불이법=단견.깨달음으로 모든 현실의 문제를 덥어버리는 것.중간을 건너 뛰면 안된다.깨달음 뒤에 숨으면 안된다.
두려움이 공부이다.
괴로움. 고가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없애는 것이 아니다.제대로 보는 것이다.
머리는 거짓말을 하지만감정과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감정과 감각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에너지를 바꾸는 것이다. 연금술.
전통 조사선에서는 이것 뿐이다.방편이 없다.그러나 자비롭지는 않다.
자아는 몸과 마음에 의지해 있다.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망가진다.무조건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는 잘못된 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
깨달음은 수행과 상관이 없다.마음은 본래 청정한 것이다.개인이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생각과 예측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직접 부딪히는 것이고부딪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허망한 나와 남의 경계에서 그 본질을 잘 살펴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앉아야 온몸이 안정됩니다.
성처럼 마음을 잘 지키고 보호해야 마음을 챙기는(관조:비추어 보는 것이 늘어난다.) 힘이 늘어나고,
고요한 마음자리로 돌아가야 언제나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다.
▶편안하여 빈틈이 없다.(선정)고요함으로서 돌아갈 것이 없다.
이때가 되면 아끼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옅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스럽게 더 밝아지며,
죄성ㅂ이 저절로 끊어지고,
수행의 공력이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번뇌가 다할 때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하는 번뇌가 사라지니,
고요한 마음자리에서 나오는 빛이 눈앞에 드러나 끊임없이 인연 있는 중생들을 제도합니다.
▶내 망념을 제도한다.
따라서 할 일을 마친 사람은 '어떤 수행의 과정도 없는 데서 수행이 되는 것'이요,
▶돈오돈수도 없고, 돈오점수도 없다.
관조 뿐이다.
원래 단계가 없다.
그러나 공부를 하다 보면 현상적으로는 점진적으로 하는 것 같다.
본래 아무일이 없다.
'어떤 수행의 공력(공용)도 없는 가운데에서 수행의 공력(공용)이 있는 것'입니다.
▶공용은 애쓰는 것,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노력하는 것이 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수행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수행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닦음 없는 닦음을 하는 것이다.
행위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수행이 아니다.
수행이란 애씀 없이 애쓴다는 것이다.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지만 깨달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수행아닌 수행이다.
2장은 정혜결사의 개강을 앞두고 한 이야기이다.
정혜결사문와 수심결> 진심직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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